(펌 장문) 정시러가 되기로 결심했다.tx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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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무실 안 생김새는, 컴퓨터가 설치된 넓은 칸막이 책상 곳곳에 각 반 담임들이 앉아 있고, 학생은 앞문으로 들어와 뒷문으로 빠지게 돼 있다. 건너편은 학년부장의 자리, 담임이 그 맞은편에 앉아 있다. 담임 앞에 가서, 걸음을 멈춘다. 앞에 앉은 담임이, 부드럽게 웃으면서 말한다.
"그래, 앉으렴."
학생은 움직이지 않았다.
"그래, 내가 저번에 말한 전형은 생각해 봤어?"
"정시."
옆반 담임이 힐끗 쳐다본다. 앉으라고 하던 담임이 갑자기 한숨을 쉬며 허리를 뒤로 젖히고 천장을 바라보며 말한다.
"정시로 간다고 해도, 내신을 일정 부분 반영하는 대학이 대부분이야."
"정시."
"제발 다시 한 번 생각해 보렴. 수시 6장이 아깝지 않니?"
"정시."
이번에는 그 옆에 앉은 옆반 담임이 입을 연다.
"우리 학교같은 일반고에서는 수시로 가는게 정시보다 훨씬 유리하고 편리한 전형이야. 내가 맡고 있는 반 아이들만 해도 벌써 반 1등,2등, 3등이 모두 수시를 썼단다. 네가 수시를 쓰게 되면, 너는 그 누구보다도 먼저 대학 합격을 보장받을 것이며, 최저만 맞추면 당당히 대학 신입생이 될 수 있어. 그렇게 된다면 대학의 초목도 너의 입학을 반길 거야."
"정시."
그들은 머리를 모으고 소곤소곤 상의를 한다.
처음에 말하던 담임이 다시 입을 연다.
"너의 심정도 잘 알겠어. 오랜 학교 생활에서, 항상 성실히 수업에 참여해 온 너의 태도와, 그럼에도 불구하고, 문과 성적치고는 그리 만족스럽지 않은 2점대의 내신을 받은 너의 처참한 심정은 충분히 이해할 수 있단다. 나는 너의 내신 등급을 탓하기보다도, 너의 성실한 학교 생활을 기록한 생활기록부를 더 높이 평가해. 내가 권유하는 수시 전형으로 인한 일체의 불이익은 없을 것을 약속할게. 너는..."
"정시."
옆에 앉은 옆반 담임이 날카롭게 무어라 외쳤다.
학생은 말없이 창가 쪽으로 다가가 하늘을 본다.
담임은 말없이 학생상담자료카드를 뒤적이기 시작한다.
그리고 그 학생의 카드를 꺼내본다. 그 카드에는 학생의 장래 희망과 목표 대학이 적혀 있다.
담임이 천천히 창가에 서 있는 그 학생을 향해 다가가 물었다.
"너는 목표로 하는 대학이 어디니?"
"......"
"음, 서울대학교군."
담임은, 자리에서 정시 배치표와 과거 선배들의 진학 결과를 모은 자료를 뒤적이면서
"2점대라면 어중간한 내신이야. 물론 내신 1등급을 따기 쉬운 과목이 어디 있겠니? 정시올인을 해 본 사람들이 한결같이 말하는 이야기지만, 재수를 해 봐야 내신의 소중함을 안다고 하잖니? 네가 모의고사에서 전과목 평균 1등급과 2등급 사이를 왔다갔다 하는 건 알아. 수시로 70%가량이나 뽑고 정시로 고작 30% 밖에 뽑지 않아 내신보다 모의고사가 잘 나오는 많은 학생들이 억울함을 겪는 우리나라 입시 제도의 모순을 누가 부인..."
"정시."
"허허허, 강요하는 것이 아니야. 다만 우리 반 내 소중한 제자가 재수... 아니 정시로 대학을 가겠다고 나서니, 담임으로서 어찌 한마디 참고되는 이야기를 안 할 수 있겠니? 재수를 쉽게 생각할지도 모르겠다만, 생각해 보렴... 푸른 20대의 청춘이 무려 1년 더 소모되고, 힘든 일과를 보내며 열심히 공부해도 1년동안 더 투자한 시간의 가치는 잔인하게도 오로지 수능 성적 하나만으로 평가되고.. 나이가 들어봐야 20대의 소중함을 안다고 하잖니? 성실한 너를 아끼는 너의 담임으로서, 난 네가 20대의 1년을 대학 진학에 더 쏟기보다는, 올해 대학에 진학하여 너의 미래를 위해 바람직한 활동을 할 수 있는 시간이 늘어났으면 좋겠구나. 차라리 올해 대학을 진학하고 반수를 준비하는 건 어떻겠니? 눈을 조금만 낮.. 아니 넓게 보자. 너가 쓸 수 있는 다른 수시 전형이.."
"정시."
"너는 제일 모의고사를 잘 봤을 땐 평균 1.2등급이었지만, 제일 시험을 못 봤을 때는 평균 2등급 가량까지 떨어져 봤던 아이야. 마킹 실수를 했었는지, 긴장을 너무 많이 했었는지, 컨디션이 안 좋았었는지는 모르겠지만, 냉정한 현실은 성적표에 찍힌 숫자만을 보는 걸 너도 잘 알고 있겠지? 문과에서 정시로 평균 2등급이면 서울시립대도 못 가는 성적이라구. 그런 네가 모의고사와는 공기부터 다르게 느껴지는 수능 시험장에서 단번에 서울대학교에 척하고 붙을 성적이 그리 쉽게 나올 것 같아?"
"정시."
"제발 현실 좀 직시하렴. 우리 학교는 일반고지만, 학교 밖에는 너 말고도 특목고, 자사고, 외고, 반수생, n수생들이 정시로 서울대를 노리고 있단다. 일반고에서도 1점대 내신을 받지 못한 네가, 그 사람들을 상대로 그리 쉽게 서울대 합격을 쟁취할 수 있을 것 같니? 내가 가진 통계에 의하면, 우리 학교에서 지금까지 서울대학교로 진학했던 학생은 10명 중 9명꼴로 모두 수시로 진학했단다. 나머지 1명은 모의고사를 볼 때마다 거의 올1을 놓치지 않을 정도의 엘리트였단다. 게다가 요즘처럼 수능이 쉽게 나오는 기조로 가는 추세인 경우에는 정시에서 한 문제를 틀릴 경우, 그 타격이 얼마나 쓰리고 아플지 짐작이 가니? 그 한 문제 차이로 전국에 있는 수백명에서 수천명의 희비가 엇갈리는 게 정시야. 너 뿐만이 아니라 대부분의 수험생들이 다 수능 때 성적이 오를 거라고 생각한단다. 하지만 내가 가지고 있는 우리 학교 선배들의 수능 성적을 보면, 오히려 모의고사보다 떨어지는 경우가 다수이고, 오르는 경우가 소수란다. 수능 때의 긴장감도 이유지만, 그보다도 학교 밖에 있는 실력파 수험생들이 다수 유입되기 때문이지. 나는 이 교무실에 고3인 너희들의 원활한 대학 진학을 돕기 위해 있는 거란다. 한 사람이라도 더 건져서 대학 합격의 영광을 누릴 수 있도록..."
"정시."
"모의고사가 잘 나올수록 수시에 불만이 많은 법이야. 그러나 그렇다고 애써 3년동안 만든 자기의 내신 성적을 없애버리겠니? 자기 마음에 안 든다고 말이야. 올해 안에 대학에 못 간다면 재수..? 재수하면 된다고? 우리 학교 졸업한 선배들이 가끔씩 교무실에 찾아오는데 그때마다 항상 속상함을 털어 놓고 간단다. 재수하면 성적이 금방 오를 줄 알았더니 막상 그런 것도 아니라고 말이야. 아이러니하게도, 이런 푸념을 늘어놓는 아이들은 고3 때 공부를 못 했던 아이들이 아니야. 학교에서 전교권에 들었던 아이들이 대다수란다. 성적이 오른다고 쳐도, 문과 정시가 얼마나 실수 하나를 용납 안 하는 잔인한 시험인지는 너도 이미 모의고사를 통해 느끼지 않았니? 무엇보다도, 모의고사와 수능은 다르단다. 작년같은 경우에도 9월 모평 때 국어b 가 1컷이 100일 정도로 쉽게 나왔는데 수능 때 평가원이 국어b에서 엿을 날려서 많은 수험생이 피본 걸 너도 알잖니? 그 많은 수험생들이 올해 정시에 먹이를 노리는 매처럼 눈에 불을 키고 달려들 게 뻔한데 네가 그 소리없는 전쟁에 서울대학교를 목표로 뛰어들겠다고..? 지금껏 학생들의 진학 실적을 보아온 너의 담임으로서, 나는 너의 미래를 생각해서라도 극구 말리고 싶구나. 부디..."
"정시."
담임은 연민에 찬 눈초리로 학생을 바라보며 말한다.
"서울대에 가려면 한국사와 제2외국어를 응시해야 해.. 자료를 보니 너는 한국사 내신 성적도 1등급이고, 교육청 모의고사 때도 항상 1등급을 받아 왔구나. 그래서 그런지, 너는 더욱 열심히 하면 수능 때 한국사 1등급을 받는 것이 무난할 것이라 생각할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수능 한국사에 응시하는 집단은 우리 학교 전교생과, 그리고 고3들끼리만 보는 모의고사와는 많이 다르다는 걸 모르진 않겠지? 지엽적인 문제에 예상 등급컷보다 높은 등급컷을 자랑하는 게 수능 때 한국사야. 그리고 너처럼 서울대를 노리는 사람이 다수 응시하기에, 표점도 짜서 만약 수능 후 서울대학교 이외의 다른 대학을 지원하고자 한다면 사탐 표점에서 큰 손해를 안고 가게 된단다. 한국사는 그렇다 쳐도, 제2외국어는 어떻게 할 거니? 네가 지금부터 제2외국어에 힘을 쏟으면 다른 과목에 소홀해질 우려도 있을 뿐더러, 높은 등급컷에 네가 받을 스트레스도 만만치 않을 거야.. 등급컷에 스트레스를 받기 싫다면 아랍어에 응시하면 되겠지만 안 그래도 가시밭을 걷는 것같은 정시 준비에 도박을 더 걸어서야 되겠니?"
"정시."
담임은, 손에 들었던 연필 꼭지로 테이블을 툭 치면서, 어느새 자리에 와서 상담 내용을 들은 학년부장을 돌아본다.
학년부장은 어깨를 추스르며 눈을 찡긋하고 웃겠지.
나오는 문 앞에서, 담임의 책상 위에 놓인 생활기록부에 이름을 적고 문을 나서자, 그는 마치 재채기를 참았던 사람처럼 몸을 벌떡 뒤로 젖히면서 마음껏 웃음을 터뜨렸다. 눈물이 찔끔찔끔 번지고, 침이 걸려서 캑캑거리면서도 그의 웃음은 멎지 않았다.
최인훈,『정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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