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해황T(국어의기술) [27444] · MS 2003 (수정됨) · 쪽지

2020-11-08 11:07: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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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평 31번 #신유형 #출제오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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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평 31번이 뭔가 찜찜했는데, 

정확히 뭐가 이상한지는 몰라서 답답해하다가

그냥 넘어갔을 눈 밝은 학생들을 위해 쓰는 글입니다.



[3줄 요약]

1. 정답에는 이상 없음

2. 출제자가 가설예측을 헷갈리는 오류를 저지름

3. 출제가능성이 높은 테마이므로, 가설 입증을 알아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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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 들어가며

2021학년도 6월 모의평가 31번의 구조는, PSAT 언어논리나 LEET 추리논증의 가설 검증 문항과 유사합니다. (저는 이 주제에 대한 PSAT/LEET 기본서 '강화약화 매뉴얼'을 쓰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해설강의를 찍기 위해 문항 구조를 살펴보니, 사소한 출제오류가 있었습니다. '가설'과 '예측'에 대한 국어사전적 지식만으로도 왜 오류인지 쉽게 설명할 수 있습니다. 다만, 가설 입증과 관련해서는 2017학년도 수능에 콰인 총체주의 세트로 출제된 적도 있고, PSAT/LEET에는 수도 없이 나온 주제이므로 간략하게 내용을 정리해보겠습니다.




1. 입증의 구조

과학시간에 가설연역법을 들어봤을 겁니다. 이 방법은 귀납적 추론임에도 이름표에 연역이 들어가 있습니다. (수학적 귀납법이 연역추론이지만 이름에 귀납이 들어간 것과 비슷하게 생각해도 됩니다.)


가설연역법은 가설로부터 연역적으로(논리적으로=타당하게) 도출된 예측을 통해 가설의 수용 여부를 결정합니다. 2017학년도 16~20번 지문으로도 소개된 적 있습니다.


"가설은 과학적 지식의 후보가 되는 것인데, 그들은 가설로부터 논리적으로 도출된 예측을 관찰이나 실험 등의 경험을 통해 맞는지 틀리는지 판단함으로써 그 가설을 시험하는 과학적 방법을 제시한다."


쉽게 말해, (가설로부터 도출된) 예측이 참이라면 가설이 참일 것이다라는 입장입니다. 일반적인 구조는 다음과 같습니다.


ㄱ. 가설 H가 참이라면, 예측 e가 참일 것이다.

ㄴ. 예측 e가 참이다.

ㄷ. 따라서 가설 H가 입증된다.


이때 입증은 100% 참으로 밝혀지는 증명과는 다른 의미입니다. "관찰이나 실험은 이론을 결정적으로 증명할 수 없지만 그것을 반증할 수는 있다."(2007년 PSAT 언어논리 34번)라고도 하는데, 이 글에서 '입증'은 '참일 가능성이 높아진다' 정도로만 이해하고 넘어가겠습니다. 


예를 들어, 아인슈타인의 상대성 이론은 다음과 같은 방식으로 입증되었습니다.


ㄱ. 아인슈타인의 상대성이론이 참이라면, 별빛이 질량이 큰 태양 근처에서 휘어질 것이다.

ㄴ. 별빛이 질량이 큰 태양 근처에서 휘어졌다.

ㄷ. 따라서 아인슈타인의 상대성이론은 입증됐다.




2. 반증의 구조

논리학을 공부하지 않았더라도, 입증의 구조는 뭔가 허술하게 느껴집니다. 왜냐하면 결론이 거짓일 가능성이 있기 때문입니다.


ㄱ. 그녀가 나를 사랑한다면, 나와 결혼할 것이다.

ㄴ. 그녀가 나와 결혼했다.

ㄷ. 따라서 그녀가 나를 사랑한다.


논리학에서는 이런 구조를 후건긍정의 오류라고 하는데, 전제 ㄱ, ㄴ이 참이더라도 결론 ㄷ이 거짓일 가능성이 있기 때문입니다. 제가 구체적인 반례를 제시하지 않더라도, 이미 여러분들은 다양한 드라마를 통해 ㄱ, ㄴ이 참일지라도 결론인 ㄷ이 거짓이 거짓인 경우를 쉽게 상상할 수 있을 겁니다.


이런 이유로 포퍼는 논리적으로(연역적으로) 타당한 반증주의를 내세웁니다. (가설로부터 도출된) 예측이 거짓이면, 가설이 반증된다(=거짓으로 밝혀진다)는 것입니다. 


ㄱ. 그녀가 나를 사랑한다면, 나와 결혼할 것이다.

ㄴ. 그녀가 나와 결혼하지 않았다.

ㄷ. 따라서 그녀가 나를 사랑하지 않는다.


논리학에서는 이런 구조를 후건부정이라고 하는데, 전제 ㄱ, ㄴ이 참이라면, 결론 ㄷ은 거짓일 가능성이 없습니다. 이런 내용은 2013학년도 수능 국어 21~24번 지문으로 다음과 같이 나온 적 있습니다.


"포퍼는 귀납의 논리적 문제는 도저히 해결할 수 없지만, 귀납이 아닌 연역만으로 과학을 할 수 있는 방법이 있으므로 과학적 지식은 정당화될 수 있다고 주장한다. 어떤 지식이 반증 사례 때문에 거짓이 된다고 추론하는 것은 순전히 연역적인데, 과학은 이 반증에 의해 발전하기 때문이다."





3. 반증의 한계

반증조차 논리적으로 한계가 있다고 콰인이 팩트폭행한 것이 2017학년도 16~20번 총체주의 지문입니다.


"콰인은 가설만 가지고서 예측을 논리적으로 도출할 수 없다고 본다. 예측은 가설, 기존의 지식들, 여러 조건 등을 모두 합쳐야만 논리적으로 도출된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예측이 거짓으로 밝혀지면 정확히 무엇 때문에 예측에 실패한 것인지 알 수 없다는 것이다."


즉, 가설로부터 도출된 예측이 거짓이라고 해도, 곧바로 가설이 반증되었다고 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당시 지문의 사례가 엉망이라서 무슨 말인지 이해가 안 됐을 텐데, 과학사를 보면 다음과 같은 인상적인 사례가 있습니다.


ㄱ. 뉴턴의 법칙, 관측에 사용된 도구 및 천체에 대한 배경지식이 참이라면, 천왕성 궤도는 이러이러할 것이다.

ㄴ. 천왕성 궤도가 이러이러하지 않다.

ㄷ. 따라서 뉴턴의 법칙, 관측에 사용된 도구 및 천체에 대한 배경지식 중 적어도 하나는 거짓이다.


언어감각이 탁월한 학생들은 ㄷ이 직관적으로 이해가 될 텐데, 그렇지 않은 학생이라면 수학시간에 배운 드모르간 법칙을 떠올려보면 됩니다.


하여튼, 과학자들은 감히 뉴턴의 법칙이 반증되었다고 생각할 수 없었기 때문에, 천체에 대한 배경지식에 오류가 있지 않을까 살펴봤습니다. 즉, 뉴턴의 법칙이 옳다는 가정 하에 천왕성 궤도에 영향을 끼치는 미지의 행성이 있을 것이라고 판단하고, 이를 수학적으로 계산해봤던 것이죠. 그리고 그 위치를 관측해보니, 똬돻! 그렇게 해황성, 아니 해왕성이 발견됐습니다. 





4. 출제오류

2021학년도 6월 모의평가 31번은, 맞히기는 쉬운데 문항 설계의 논리적 구조가 이상합니다. 그래서 찬찬히 분석해본 학생들은 뭔가 찜찜했을 텐데, 정확히 뭐가 이상한지는 몰라서 답답해하다가 그냥 넘어갔을 겁니다.





이 문항에서 '가설'을 '예측'으로 바꿔야 합니다. 입증의 구조로 표현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ㄱ. ㉠많은 ICT 다국적 기업이 법인세율이 현저하게 낮은 국가에 자회사를 설립하고 그 자회사에 이윤을 몰아주는 방식으로 법인세를 회피한다면, ICT 다국적 기업 자회사들의 수입 대비 이윤의 비율은 법인세율이 높은 국가일수록 낮다.

ㄴ. ICT 다국적 기업 자회사들의 수입 대비 이윤의 비율은 법인세율이 높은 국가일수록 낮다가 참이다.

ㄷ. 따라서 ㉠많은 ICT 다국적 기업이 법인세율이 현저하게 낮은 국가에 자회사를 설립하고 그 자회사에 이윤을 몰아주는 방식으로 법인세를 회피한다가 입증됐다.


이렇게 보면 [판단]도 다음과 같이 바뀌어야 합니다.


예측이 참이라면 가설(㉠)이 입증됐다고 할 수 있으므로, 

㉠을 근거로 디지털세를 부과하는 것을 지지할 수 있겠군.



즉, 31번에서 ㉮에 들어갈 내용은 가설(㉠)입니다. 그리고 가설이 입증되어야, 이를 근거로 디지털세 주장을 할 수 있다는 것이 31번의 구조입니다. (상식적으로 어떤 주장을 하려면, 그 주장의 근거에 대한 정당화가 먼저 있어야죠.)


이렇게 보면 정답을 찾기가 무척 쉽습니다. 가설(㉠)과 같은 내용을 찾으면 됩니다. 그러면 ④가 정답이라는 것이 바로 보이죠. 정답인 ④가 ㉠과 동어반복처럼 느껴지는 것은 입증의 구조상 그럴 수밖에 없습니다. 얼렁뚱땅 내용일치처럼 풀 문제가 아니었던 거죠.



다들 머리가 개운해졌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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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AQ1] 과거의 일을 '예측'이라고 할 수 있나요? 법인세율과 수입 대비 이윤의 비율은 전부 과거의 수치일 텐데...

예측은 미래의 현상뿐만 아니라, 가설형성시 알지 못했거나 알려지지 않았던 과거의 현상에 대해서도 가능합니다. 참고로 현재 증거를 바탕으로 미래를 추측하는 것을 선행 예측prediction, 과거를 추측하는 것을 후행 예측postdiction, 역행 예측postdiction이라고 구분하기도 합니다. 실험을 하기 어려운 진화론이나 사회과학에서는 후행 예측도 흔합니다.



[FAQ2] 지문의 내용에 비춰봤을 때, 후건긍정인 선지는 항상 오류인가요?

아닙니다. 예외적인 경우가 두 가지 있습니다. 하나는 과학기술 지문에서의 필요원인 추정입니다. 이에 대해서는 아래에서 자세히 설명한 적 있습니다.


필요원인 추정™ - 애벌랜치 광다이오드 출제오류 논란 종결

https://orbi.kr/00031797465


다른 한 가지 경우는, 전기추1에서 기출선지와 함께 다룬 적 있는데, 추후 시간이 되면 써보겠습니다.

rare-머리야 터져라! rare-하트라봉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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