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수는 진중하고, 진보는 촉새 같은 건
게시글 주소: https://d.orbi.kr/0006062296
여러분이 '정치'라는 행위에 부정적인 가치를 매기고 있어서 그렇게 '보이는' 겁니다.
즉 '정치'는 부정적인 것이므로 '정치 이야기'를 하면 나쁜 이야기를 하는 것이죠(=여러분의 인식 구조).
(아 물론 여기서 '여러분'은 불특정 다수로서의 여러분이 아니라 특정 다수, 그러니까 상정된 독자층으로서의 여러분입니다. '상정된 독자층'이 누구인지는 말 안 해도 본인이 아시겠죠)
그런데 제가 하려는 이야기는, 보수가 집권여당 쪽이기에 자연히 정치적으로 우세에 있으니 '정치 이야기'라는 일종의 '정치적 대결'에 굳이 참여할 필요가 없다거나(본전치기거나 심지어는 본전도 못 찾겠죠) 진보는 그 반대로 '정치 이야기'라는 '정치적 대결'을 끊임없이 환기함으로써 자신의 권력적 위상을 역전시키고자 의욕한다는 그런 이야기가 아닙니다. (물론 이 자체로는 유의미한 분석일 수도 있겠죠)
저는 오히려 좀 더 근본적인 이야기를 하고자 합니다. 주제는 노골적으로 이렇습니다: "정치는 과연 정말로 나쁜/부정적인 것일까?"
우선 정치에 대해 어느 정도 합의/절충이 된 일반론적 정의를 보도록 하죠.
'통치와 지배, 이에 대한 복종 ·협력 ·저항 등의 사회적 활동의 총칭'
[네이버 지식백과] 정치 [politics, 政治] (두산백과)
직관적으로 받아들일 수 있는 정의일 겁니다. 저도 동의를 하구요.
통상적으로 보수와 진보를 수능 사회문화에서는 위 정의에 따르면 다음과 같은 의미 구조로 도식화/이분화합니다. '보수 : 진보 = 복종.협력 : 저항'
저는 위 도식을 참이라고 보고, 그렇기에 오르비는 대체로 보수적인 곳이라 생각합니다. 그리고 이는 비단 오르비만의 속성이 아닙니다. 대한민국의 숱한 네티즌 집합들도 보수-오르비와 상통합니다. 왜냐하면 '여러분'과 '그들'은 '정치 이야기'를 불순한 것으로 생각하고 있으니깐요. 바꾸어 말하면 '여러분'과 '그들'은 정치 이야기를 함으로써 모종의 분열이 야기된다면 그것은 나쁜/부정적인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다는 것입니다(이에 대한 근거는 여러분의 직관/경험에 호소하는 것으로 대체하지요). 위 도식으로써 환언하자면 즉 이런 말입니다: '정치 이야기'는 복종 그리고 특히 '협력'을 방해한다. 그러므로 그것은 건전하지 못하다.
전형적인 보수의 논리입니다. 근데 그렇다고 해서 여러분이 우경화되었으니 제발 정신 좀 차려라! 이런 이야기를 하려는 건 아닙니다. 전 정치적 상대성을 존중합니다.
제가 말하고자 하는 것은 다른 것입니다. 이것은 다분히 메타적인, 예컨대 수학으로 치면 풀이 과정이 아니라 '왜 그렇게 풀었지?'하고 메타인지로 자신을 점검하는 것(=위에서 자신을 내려다보는 것)과 같은 초월적/반성적 차원에서의 반문입니다.
선제라는 개념이 있습니다. 칸트 철학을 해설할 때 쓰는 개념인데, 쉽게 말해 우리가 보는 세상은 우리라는 필터링(=선제)를 거쳐야만 우리가 아는 '세상'이 된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다시 말하자면 존재(세계)는 그 자체로서 우리에게 다가오는 게 아니라 '우리'라는 선제 안에서 순환한다는 의미도 갖습니다. 헌데 제가 선제라는 개념을 꺼내든 이유는 철학 강의를 하기 위함이 아닙니다.
제가 관찰하기에 요즈음 인터넷 공론장에는, 적어도 그 안의 다수에게는 한 가지 암묵적 조건이 '선제'되어 있습니다. 이미 다들 눈치를 채셨겠지만, 선제된 그것은 다름이 아니라 제가 위에서 상술한 '보수의 논리'입니다. 이미 인터넷 공론장이라는 하나의 담론 공간에서 정치는 타락한 행위로 전제되어 있습니다. 이것은 '여러분'이라는 다수적인 일종의 상호주관적 공동체가 갖는 암묵적인 심리적 합의입니다.
그런데 하나 아이러니한 것이 있습니다. '인터넷 공론장'은 하나의 민주적 토론장이기도 합니다. 즉 민주적 절차와 원리가 지배하는 곳'이죠'. 그런데 사실 민주적 토론장으로서의 인터넷 공간이라는 것은 이미 불가능합니다. 왜냐하면 '여러분'이라는 다수가 가진 상호주관적 규칙(=선제)에 따라 담론은 늘 한쪽으로 편향된 담론이기 때문입니다. 저는 이것을 '민주주의적 파시즘'이라고 부르고 싶습니다. 혹은 '민주주의의 역설'이라고 하면 좀 더 직관적일 테구요.
주제가 뭐였죠? '정치는 과연 나쁜/부정적인 것인가?'였나요. 그런데, 여기까지 글을 읽으신 분들은 알겠지만, 전 정치라는 행위를 옹호하여 그것의 속성이 긍정적으로 수용되게끔 '여러분'을 설득하려는 의도가 전혀 없습니다.
오히려 제가 말하고 있는 것은 '정치 위의 정치'입니다. '정치 이야기는 불건전해!'라는 반反정치적 담론은, 그것의 타당성과는 상관없이, 그것이 공론장의 지배적인(dominant) 상호주관적 규칙인 한 다수-소수라는 대립적 구도를 생성한다는 것. 그리고 그 다수-소수의 구도는 다수의 안에서만 순환하는 세계로부터 완전히 배제된 소수를 결과 짓는다는 것.
다수-소수.
이것은 다분히 정치적인 함축을 품고 있습니다. 단순히 편이 많은 쪽과 편이 적은 쪽의 대비가 아닙니다. '편'이란 말을 잘 들여다보세요. 그것은 이미 통치.지배에 대한 권력의지를 암시하고 있습니다. 즉 '다수'는 단순히 쪽수가 많다는 '팩트'가 아니라 '소수를 지배하고 싶다/소수를 내 영향권 하에 두고 싶다'라는 '욕망'인 것입니다.
결론적으로, '정치 이야기는 불건전해!'라는 반정치적 담론이 결국은 정치적인 작용이라는 것입니다.
제가 하고 싶은 말의 핵심은 다음과 같습니다. "정치로부터 순수한 공간은 사실 없다. '저항'(적극적 행동)만이 정치가 아니며, 침묵.협력(소극적 행동)이라 하더라도 다수의 논리로서 정치[정치적 욕망]일 수 있다."
"정치가 나쁘면, '여러분'도 나쁜 놈이다."
긴 졸문을 읽어주신 분들 감사드립니다.
0 XDK (+0)
유익한 글을 읽었다면 작성자에게 XDK를 선물하세요.
정치 얘기만 나오면 부정적으로 생각하는게 일제의 식민사관 중 당파성론의 논리 아닐까요 ..어느 사회에나 여당과 야당의 경쟁은 당연히 존재하는건데 요즘은 사회가 나아가야할 길이 아니라 자신의 사리사욕을 채우기 위한 수단으로 정치가 악용되는 것 같아서 사람들이 그런 인식을 갖게된 것 같습니다
정치 얘기만 나오면 부정적으로 생각하는게 일제의 식민사관 중 당파성론의 논리 아닐까요 ..어느 사회에나 여당과 야당의 경쟁은 당연히 존재하는건데 요즘은 사회가 나아가야할 길이 아니라 자신의 사리사욕을 채우기 위한 수단으로 정치가 악용되는 것 같아서 사람들이 그런 인식을 갖게된 것 같습니다
공감합니다
정치얘기가 나올 때 진보 입장인 사람이 많아서 그 다수를 이길 자신이 없어서 보수들이 가만히 있는 거라 봐요